이번호에서는 지구법학회 회장 칼럼을 비롯해 이탈리아에서 '살아있는 종들의 의회' 개최, 에콰도르의 자연의 권리 판결과 브라질의 주 헌법 개정 추진 소식, 그리고 미국 토머스 베리 법학도서관의 개관 소식을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자연의 권리를 법과 제도, 학문과 거버넌스 속에서 구현하려는 국제 사회의 다양한 실천을 함께 짚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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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경향신문)
사물에서 관계적 인격체로
박태현 지구법학회 회장
※일러두기: 이 글의 내용은 『사상계』(2026년 9·10월호) 기후·생태특집에 실릴 글(「사물에서 관계의 주체로: 부암동 은행나무 독살사건이 던진 질문」)의 일부입니다.
백 년을 살아온 나무를 죽이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미술관 담장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한 미술관 측이 은행나무 밑동에 구멍을 뚫고 제초제를 주입했다. 부암동의 풍경과 주민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아 온 나무는 그렇게 말라갔다. 시민들은 분노했다. 이 사건은 오래도록 지역 공동체와 함께 살아온 노거수가, 설사 어떤 그럴듯한 명분이 있을지라도, 함부로 다뤄져서는 안 된다는 생명존중 의식을 드러냈다. 동시에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노거수는 우리 사회의 법과 행정에서 자신의 존재에 합당한 보호를 받는가?
근대 사법의 세계는 권리주체인 ‘사람(person)’과 권리객체인 ‘사물(thing)’로 구축되었다. 법에서 권리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사람, 곧 인격체다. 인격체에는 생물종으로서 ‘인간’과 회사와 같이 법인격을 부여받은 사회적 실체로서 ‘법인(legal person)’이 포함된다. 법에서 인격이란 사람으로서 품격이나 됨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의무나 책임의 귀속점을 정하는 법기술적 개념이다. 서구 근대법 체계에서 인간 이외의 어떤 실체에 인격이 인정되려면 특별한 법률규정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인간을 제외한 어떠한 생명체도 인격체, 곧 독립적인 권리주체로 인정되지 않고, 사물로 분류된다.
인간이 구축한 법체계 밖의 세계는 어떤 존재들로 이뤄져 있을까? 그레이엄 하비는 세계는 인간만이 아니라 여러 “persons”, 즉 인격적 존재들로 가득 차 있으며, 삶은 언제나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뤄진다고 본다(Graham Harvey,『Animism: Respecting the Living World』, 2005). 하비는 사람만 person인 것이 아니라, 동물, 식물, 바위, 산, 강, 구름, 천둥 같은 존재들도 특정한 관계 속에서는 other-than-human persons, 즉 “비인간 인격체”일 수 있다고 한다. 어떤 바위나 강이나 나무가 person이라는 말은 ‘그것이 인간과 같은 이성·언어·의식·권리능력을 가진 존재’는 뜻이 아니라, ‘그것을 단순한 물건처럼 처분해서는 안 되는 관계적 상대’라는 뜻에 가깝다. 이 점에서 person은 존재론적 속성이라기보다 ‘관계적 지위’를 말한다.
어떤 존재가 person이 되는가. 버드 데이비드에 따르면 어떤 존재가 인간과 관계 맺고, 인간이 그 존재와 함께 살아가고, 그 존재에게 응답하며, 그 존재를 사회적·의례적·생태적 관계망 안에 받아들일 때 person으로 드러난다고 한다(Nurit Bird‐David, “Animism Revisited: Personhood, Environment, and Relational Epistemology”, 1999). 하비와 데이비드의 이러한 사고는 이 세계를 존경받을 자격이 있는 person들의 관계망이자 공동체로 해석하는 신애니미즘에 바탕을 둔 것이다(허남진·조성환, “인류세 시대 존재론의 전환-person과 님”,『어떤 지구를 상상할 것인가』, 2023, ).
세계 내 존재들을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부암동 은행나무는 단지 미술관 옆 사유지에 뿌리를 내린 식물이 아니다. 백 년 동안 장소의 풍경을 이루고 주민들의 기억과 관계를 쌓아 온 ‘관계적 인격’을 가진 존재다. 시민들이 그 죽음을 부당한 살해처럼 받아들인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person을 어떤 속성이 아니라 관계적 지위로 보는 신애니미즘은 자연물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법체계의 의미를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하는데 귀중한 규범적 통찰을 제공한다. 자연물에 인격성을 부여하는 것은 그것이 인간과 같은 이성이나 언어능력을 지녀서가 아니라, 자연물이 인간 공동체와 지속적인 역사적·문화적·생태적 관계를 형성해 왔고 그 관계에서 독자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이익을 갖기 때문이다.
관계적 인격이라는 관점이 곧바로 모든 나무에 법인격을 부여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백 년 동안 한 장소의 풍경을 이루고 주민들의 삶과 기억 속에 자리 잡아 온 노거수를 단지 토지에 부착된 사유재산으로만 취급하는 것도 온당하지 않다. 이러한 나무에는 일반 수목과 다른 법적 지위를 부여하고, 시민 가디언이나 자연유산 후견인처럼 그 존속과 건강을 대변할 제도를 마련할 수 있다. 부암동 은행나무 사건이 우리에게 묻는 것은 자연이 인간과 같은 인격을 가졌는가가 아니다. 자연을 끝까지 사물로만 취급하는 법질서가 기후·생태위기의 시대에도 여전히 정당할 수 있는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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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Architecture Today)
이탈리아 밀라노, '살아있는 종들의 의회' 개최
2026년 7월, 이탈리아 밀라노 시청에서 건축가 스테파노 보에리(Stefano Boeri)가 기획한 ‘살아있는 종들의 의회(Parliament of Living Species)’가 열렸습니다. 이번 행사는 비둘기, 박쥐, 벌, 개구리, 여우, 지렁이 등 도시 생태계를 구성하는 약 50종의 생물을 인간 대표가 대변하며 도시의 미래를 논의하는 실험적 의회로, 자연을 도시 의사결정의 주체로 상상해 보는 프로젝트입니다.
이번 의회는 밀라노 시와 밀라노 피콜로 극장(Piccolo Teatro di Milano)이 공동으로 추진했으며, 파리 카르티에 현대미술재단(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에서 선보였던 ‘동물도시(Animal City)’ 연구 프로젝트를 실제 도시 거버넌스로 확장한 것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도시와 자연을 분리된 공간이 아닌 다양한 생명종이 함께 살아가는 복합적인 생태계로 바라봅니다. 특히 도시 개발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지만 기존의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에서는 배제되어 온 비인간 존재의 이해관계를 정책 논의에 반영하는 데 주된 목적이 있습니다.
첫 회의에는 밀라노 자생 야생동물과 계절마다 도시를 찾는 철새 등 다양한 생물종을 대변하는 참가자들이 참여했습니다. 이들은 산시로(San Siro) 경기장 재개발, 도시 운하 복원, 녹지 및 자생식물 관리 등 밀라노의 실제 도시 현안을 각 생물종의 생존과 생태적 관점에서 다각도로 토론했습니다.
그 결과물로 제시된 「공유된 지구 선언(Manifesto of the Shared Earth)」 초안에서는 미래 도시가 지향해야 할 5대 원칙(공간·이동·존재의 권리와 고유한 삶의 리듬을 유지할 권리, 정치적 대표성을 가질 권리)을 제안했습니다. 이어 발표된 「살아있는 종들의 의회 선언(Parliament of Living Species Manifesto)」을 통해 생태 연결축 조성, 연속적인 서식지 보전 등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기 위한 실천적 도시설계 원칙을 명시했습니다.
인간 중심주의를 넘어 비인간 존재까지 대변하는 이른바 '사물의 의회(Parliament of Things)' 형태의 이번 시도는, 비록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도시계획에 자연의 권리를 적극 반영하는 혁신적인 거버넌스 모델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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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Mongabay)
에콰도르 법원, 자연의 권리 침해로 오르테가강 유역 광산 채굴권 취소
2026년 6월 에콰도르 법원이 로하주(Loja Province) 오르테가강(Ortega River) 유역에서 운영되던 17개 광산 채굴권을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오르테가강 유역은 안데스와 아마존을 잇는 포도카르푸스–엘 콘도르 생물권보전지역(Podocarpus–El Cóndor Biosphere Reserve)에 속한 생물다양성의 핵심 지역입니다. 이번 소송은 광산 개발 과정에서 지역 공동체와의 사전 협의 절차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채굴 과정에서 발생한 중금속 오염 등으로 하천 생태계가 훼손되었다는 문제 제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법원은 이러한 개발 행위가 에콰도르 헌법이 보장하는 자연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채굴권 취소와 함께 채굴 장비 철거, 훼손된 생태계 복원 조치를 명령했으며, 지역 원주민 공동체인 오르테가 알토 문화공동체(Intercultural Community of Ortega Alto)를 오르테가강의 법적 후견인으로 지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공동체는 앞으로 강의 생태적 회복을 모니터링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이번 사건은 사라고로 데 사모라 친치페 연맹(Federación Saraguro de Zamora Chinchipe)의 법률 지원을 받아 해당 지역 공동체가 제기한 소송으로, 포도카르푸스–엘 콘도르 생물권보전지역의 생태적 가치를 보전하는 동시에, 지역 공동체를 자연의 법적 후견인으로 인정한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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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파라이바주, 자연을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는 헌법 개정 추진
2026년 6월 16일, 브라질 파라이바주 의회는 자연을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는 주 헌법 개정안(PEC 제16/2024)을 특별위원회에서 승인하고 본회의 심의 절차로 넘겼습니다. 개정안은 환경을 '공동의 재산'으로 규정한 현행 주 헌법 제227조를 개정해, 인간의 이익과 무관하게 고유하고 지속적인 가치를 지닌 자연을 권리의 주체로 공식 인정하고, 자연의 존재·재생·진화에 대한 권리를 명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개정안은 맹그로브, 하구, 사구, 브라질의 모래 해안 생태계인 레스팅가(restinga), 산호초, 해안 절벽, 해변 등 주요 생태계를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도록 했습니다. 이와 함께 브라질 북동부의 고유 반건조 생태계인 카팅가(Caatinga)를 주의 자연유산으로 지정해 보전과 복원을 의무화했습니다.
개정안이 최종 통과될 경우, 모든 시민은 물론 검찰, 공공변호인단(Defensoria Pública), 환경단체 등이 자연의 권리 침해에 대해 행정적·사법적 구제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됩니다. 이번 개헌안은 에콰도르와 볼리비아의 자연의 권리 헌법, 뉴질랜드 황가누이강 사례 등 국제적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브라질에서 자연의 권리를 주 헌법 차원에서 명시하려는 가장 중요한 입법 시도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현재 구체적인 본회의 일정이 확정되지는 않았으나, 최종 발효를 위해서는 향후 본회의 상정 후 총 2차례의 심의·표결과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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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The Thomas Berry Foundation)
미국 지구법센터, ‘토머스 베리 법학도서관’ 개관
2026년 6월 1일, 미국 환경법 단체 지구법센터(Earth Law Center)는 콜로라도주 듀랭고(Durango) 본부에서 ‘토머스 베리 법학도서관(Thomas Berry Law Library)’을 개관했습니다. 도서관은 지구법학(Earth Jurisprudence) 연구자와 실무가, 학생들이 함께 연구하고 교류하는 공간으로, 지구법의 토대를 이루는 법학, 법철학, 윤리학, 종교, 원주민 지식 관련 자료를 폭넓게 갖추고 있습니다. 일반인도 사전 예약을 통해 이용할 수 있으며, 장서 기증도 가능합니다.
도서관의 명칭은 지구법학의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문화사학자이자, 전통적인 신학자(theologian)에 대비해 자신을 '지구 신학자(geologian)'로 자처했던 토머스 베리(Thomas Berry)를 기리기 위해 붙여졌습니다. 베리는 "지구는 객체들의 집합이 아니라 주체들의 공동체(a communion of subjects, not a collection of objects)"라고 강조하며 자연의 권리 운동과 지구법학의 철학적 토대를 제시한 인물입니다.
지구법센터는 현재 30여 개국에서 정부, 원주민 공동체, 시민사회와 협력해 자연의 권리와 지구 중심의 법체계 구축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구법학 분야의 대표적인 로스쿨 교재를 집필하는 등 교육과 연구 기반 확산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이번 도서관 개관은 토머스 베리의 사상을 계승하고 지구법학 연구와 국제적 협력을 위한 새로운 거점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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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들렌 치게, 「숲은 고요하지 않다: 식물, 동물, 그리고 미생물 경이로운 생명의 노래」, 흐름출판, 26.05.08
- 이성엽, 「꿀벌의 열정페이는 끝났다!: 경제학으로 읽어낸 생태계 진실」, 내인생의책, 26.06.03
- 이상헌, 「곤충 인문학: 비늘과 딱지, 날개맥이 누설하는」, 초봄책방, 26.07.20
- 최태영, 「동물의 향기, 인간의 풍경: 동물생태학자의 동물과 인간 이야기」, 돌베개, 26.07.24
- 이은애, 「왜 재활용은 실패하는가: 플라스틱 순환경제 현장 7년의 기록」, 동아시아, 26.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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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하반기 지구법 강좌 <기후위기 시대의 새로운 법질서>
대한변호사협회 변호사특별연수 전문연수 인정 강좌인 2026 하반기 지구법 강좌가 8월 26일 지구와사람 공간에서 첫 강의를 시작합니다. 강좌는 매주 수요일 진행되며, 첫 강의는 현장과 온라인을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2강부터 4강까지는 온라인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 일시: 2026. 8. 26.(수) - 2026. 9.16.(수) 19:00-21:00 ❍ 장소: 지구와사람&온라인 (서울시 용산구 회나무로 66, 1층) ❍ 공동기획: 지구와사람, 지구법학회, 법무법인 원, 사단법인 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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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법학회는 "인간은 더 넓은 존재 공동체의 일부분이며, 모든 구성원의 안녕이 전체 지구의 안녕에 의존한다"는 사고에 기반한 법과 인간 거버넌스에 관한 새로운 철학인 지구법학(Earth Jurisprudence)을 연구하는 학술 단체다. 2015년 출범 이후 학자들과 법조인들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세미나, 컨퍼런스, 연구 출판 등을 통해 지구법학 담론을 형성하고 확산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2021년에는 한국연구재단 한국학술지인용 색인(KCI)에 학회로 등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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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지구와사람 people@peopleforearth.kr 서울시 용산구 회나무로 66, 1층 02-733-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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